향정신성 의약품은 정신을 흐리게 하고 멍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한다-는 것은 속설일 뿐, 그렇지 않다고 정신과 의사들은 이야기 하는데 뭐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실제로 경험한 바, 금단증상이 없다는 SSRI계 항우울제 뭐 파로제틴 같은것도 사실은 약을 중단했을때 나타나는 특이한 증상이 있고 그런걸 보면. 사실 그럴수도 있겠지, 라고 생각한다. 뭐 그래서 그런건지, 아니면 그냥 나의 증상이 잘 조절되지 않아서 그런건지 요즘에는 계속 그냥 멍하다 아무 생각이 없다. 기억력도 나빠져서 수업시간에 앞시간에 필기한 걸 보면 으음 이런일이 있었나 싶고. 하긴 수업에 잘 안들어가서 그런 것일수도 있겠지만. 아무런 고민이 없다. 어쩌면 이렇게 계속 살면 세상 편하게 사는건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이렇게 살고 싶었던건 아닌데. 학교도 잘 안가고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고 밥먹기도 귀찮고 숙제도 하기 싫고. 그래서 숙제도 많이 밀리고... 당장 내일부터 기말고사인데 벌써 나와는 한마디 상의없이 종강한 과목들도 있고... 오늘 마지막 수업이니 꼭 가야지! 하고 수업에 들어갔더니 불꺼진 강의실이 나를 맞이했다. 나에게는 하기 싫은것은 죽어도 하지 않는 근성이 있다. 하하. 하지만 하고싶은 것을 죽어도 해내는 근성은 없다. 이대로 졸업하면 어떡하지? 나 이렇게 살아서 어떡하지? 이제 자취방을 떠나 백수인 상태로 집에 들어가면 또 어떡하지? 뭐 이런 것을 고민해야 하겠지만 별 생각이 없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으면서도 느리다. 답답하다. 모든것이 머물러 있는것 같은데 지나보면 나만 빼고 모든것은 달라지고있다. 내가 끝나버렸으면 하고 생각하는 그런것들만 빼고 모든것은 지나간다. 지루하다. 만화 H2에 나오는 무수한 말장난들 중 하나에 이런 말을 하는데, 쉰다는 것은 뭔가를 열심히 하던 사람이 하는 얘기야. 히로가 공부한다고 잠시 앉아있다가 그 잠시를 못버티고 쉰다고 밖으로 나가자 엄마가 하는 얘기. 어디가니. 기분전환좀하러요. 기분전환이란건방금전까지뭔가열심히하던사람이하는거야. 나도 뭐 별로 열심히 한건 없는데 뭐 지금도 쉬는거나 다름없이 살고 있는데 그렇지만 지금 원하는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이 모든게 끝났으면 좋겠다. 이런것. 요즘에 드는 생각은 그런것 뿐이다. 졸업? 어떻게 되겠지뭐. 나 이렇게 살아서 어쩌냐고? 나도 모르겠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감정이 마비된 것 같다. 별로 느껴지는게 없다. 상담을 하러가면 항상 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어떤 일이 있으면 기분이 어떻냐. 그런것들을 물어보는데 대체로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실제로 아무런 기분도 생각도 들지 않는것 같다. 한 번 씩 터져나오는 감정은 짜증이나 분노 같은것들. 나도 사실 잘 하고 싶었는데. 이 세상에서 제일 잘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바로 난데. 하지만 그렇게 혼자 외쳐봐야 뭘하니.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들어준다 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시간이 지나간다. 지난 한 주 뭐했나 생각 해 보면 참 지루하고 긴데. 이제 내일, 아니 오늘부터 1주일동안 시험8개 보고 레포트 4개쓰면(이게 과연 가능할까?) 이번 학기는 끝. 시마이. 디엔드.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시험을 안보고 레포트를 안써도 학기는 끝난다. 학기는 끝나는데 나의 대학생활이 끝나지 않을뿐. 모든게 그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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