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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화상 2007/11/07

자화상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07/11/07 02:21

자화상


세기말을 가로질러 아직 살아보지 못한 삶의 저편으로 나무 이파리 하나 흐른다. 하늘은 우중충하고 전반전이 끝난 나의 生은 가파르다. 그런 지금 무엇보다 내가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삶이다.

내 청춘의 정오를 들여다 보면 거기엔 송두리째 불안뿐이다. 그 누구도 달랠 수 없는 광포한 폭풍우 뿐이다. 10미터 앞을 분간할 수없는 안개 속을 떠돌던 광기뿐이다. 나는 이제 헤아린다. 그때 어째서 불안 앞에서 광기로 떨 수밖에 없었는지.

언제나 삶은 지금부터 달아난다. 미래라는 향기, 향수 속으로 빠르게 달아나며 눈부시게 사라진다. 언젠가는 나를 찬미 하는 날이 올 것이다. 아름답게 늙는 사람을 보면 신비롭다. 추해지지 않으려면 끝까지 고독해야 한다.

서른다섯 이란 나이는 인간에 지치는 나이다. 그러나 비로소 인간에 다가가는 입구에 도착한 나이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인간의 머리 위를 나르는 송골매의 나라에서 구름에 도취된다. 자연의 왕국에서 사랑에 취하듯이.

기계의 시대에 기계가 눈물을 흘리려 한다. 그러나 기계는 기계일 뿐이다.인간을 그리워한 시보다 인간을 괴로워한 시를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바람은 불고 아이는 태어나고 거창하지 않게 달팽이는 웃는다.

구원 같은것 없이......

오늘밤에도 나를 괴로워한 時를 쓴다.

                                                   박용하 ㅡ '영혼의 북쪽'



가파른 생. 부끄러운 삶. 불안. 상실. 아름답게 늙는 사람을 보면 신비롭다. 추해지지 않으려면 끝까지 고독해야 한다. 아름답게 늙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끝까지 고독할 용기도 없다. 불안한 것은 내가 닮아 갈 삶이 어떠한 것인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승은 없고 기술자만 있는 학교와 도서관 / 내 피에 아버지의 피가 섞여 있다는 역겨움"(<다시는 보스톤에 가지 않으리>) 그런 상실의 기억이 쌓이고 쌓여서 내 불안 곡선의 기울기를 결정한다. 새벽 1시가 다 되어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탁자 위에 놓인 "진보정치" 찌라시를 읽으며 과일로 배를 채우다가, 분신자살한 전기원 노동자의 이야기를 읽었다. 이소선 여사가 그 빈소에 찾아간 대목에서 눈물이 났다. 그의 삶도 불안했을 것이나, 부끄럽게 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 선택으로 아들을 잃었는데, 40여년이 흐른 지금 세상은 이렇게도 더디다. 아들을 잃은것도 억울한데, 어쩌면 '개죽음' 이라는 것을 생각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잘 모르겠다. 이소선 여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그저 나는, 내 인생의 보험을 마련하기 위해, 저녁도 못먹고 12시 넘어서 귀가하는 내가, 월 4000원 짜리 찌라시를 펼치고 늦은 저녁으로 감을 깎아 먹으면서 그들의 삶을 생각하고 있다는, 그 모든 사실이 너무나 억울했다. 그들의 삶도 나의 삶도. 천천히 천천히 눈물이 흘렀다. 두렵고 또 외롭다.

2007/11/07 02:21 2007/11/07 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