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쓰는 방법을 잊어버려서, 연습삼아, 버스안에서 생각 난 일을 써본다.
* 그런데 이럴때는 어떤 호칭을 써야할지 고민스럽다.
강풀씨, 는 당연히 직접 부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지만 3인칭으로는 사용해도 되는 것 같다. 나의 생각인데, 우리말을 외국어와 단순비교 하기는 그렇지만, 3인칭으로 Mr. 라는 의미로 사용할 경우에 -씨는 나이와 지위고하와 관계없이 크게 틀리지 않은 호칭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무미건조하고, 존대도 하대도 아닌 그런 호칭이다. (2인칭이라면 확실히 하대이다.) 그래서 존대를 하고싶은 경우엔 거북하다.
강풀님, 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최근 10여년간 어딜가도 ~님을 사용하는 추세인데, 나는 이 과도한 '예의'가 불편하다. 특히 "사랑합니다 ***고객님" 같은거 말이다. 존대는 하고싶은데 이 단어를 쓰자니 불편해서 난감할때가 많다. 지금도.
강풀선생, 이 가장 적합한것 같은데, 역시나 나의 생각이지만, 좋은 단어라고 생각하고. 그런데, 좀 어색하지 않은가. 예전의 '간장선생' 이란 영화도 생각나고. -_-;;
조금 친분이 있는 경우라면 선배, 형이라는 호칭을 좋아하지만, 이 경우는 아닌 듯 하고.
아무튼 그래서 제목은 쉼표로 줄였다. 본문은 님은 거슬리고, 선생으로 쓰다가 도저히 집중이 안되서 씨가 그나마 내용에 집중이 되는것 같아 바꾸었다. 2인칭이라면 선생을 택했을거다. 양해를 구한다.
그러니까 2005년의 가을이었다. 나는 모 대학 모 학생회에서 일하고 있었고, 가을 축제인 학술제를 맞이 했다. 내가 속한 학생회는 연초 4명으로 시작하여, 2학기에 접어들자 2명으로 인원이 줄어들었고, 나와 학생회장이던 선배 둘이서 참으로 많은 일을 해내야 했다. 학술제의 그 많은 일 중 하나가 '강연' 이었고, 나는 그 강연에 대한 모든것을 다 처리 해야했다. 강연 기획, 섭외, 홍보, 금전관리 등등.
아마도 학생의 날을 기념하여 대학생들의 위치가 어쩌고 하는 그런 내용이었을거다.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강연'이라는 기획이, 뭐 그리 새로운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라,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폐기하게 될 리스트에 속해있었다. 난 그것 말고도 할일이 많았다. 삼일동안 포스터 4매와 홍보용 양면 전단지 2매를 포토샵으로 밤새워 만들었고, 온갖가지 물품들을 구매해야 했고, 온갖 장소를 대여해야 했고, 한달에 20만원어치의 전화요금을 소비하며 온갖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대었다.
'사정의 여의치 않으면' 이라는게 내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어떻게든 하자, 라는 막무가내의 생각을 갖고 있기도 했었고. 혼자서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처음으로는 김규항씨에게 메일을 보냈다. 김규항씨는 놀랍게도, 내가 다니던 모 대학과 담장을 나란히 하고 있는 모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여담과 함께, 아쉽게도 그날은 다른 일이 있다는 친절한 답장을 보내 주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마음은 급했다. 어느날 자정이 가까워 집에 돌아가 자취방의 책상 앞에 당시 동거하던 친구와 나란히 앉아 컴퓨터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고민하다가, 만화가는 어떨까, 웹툰이 흥행하고 있으니까, 오오 강풀씨는 어떨까, 이런 대화 끝에, 괜찮을것 같다! 는 생각을 했고,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려고 그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작업실 전화번호가 있는게 아닌가! 우와!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작업실의 후배(혹은 어시스턴트?)인듯 했다. 강풀씨를 바꿔주겠노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모 대학 모 학생회의 모모입니다. 저희가 이번에 어쩌구 저쩌구해서 전화드렸습니다.
강풀씨, "지금 시각이 몇시인지 아십니까? 내일 다시 전화 해 주세요."
...
그때서야 시계를 봤다.
밤 12시.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다음날 전화를 걸어서 죄송하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 강풀씨는 '만화가들은 밤에 자지 않을거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지요' 라고 애써 이해 해 주려는 듯 했다. 하지만 설령, 모든 만화가들은 해가 진 후에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법령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개인적인 시간이며 신체적으로는 의당 잠자리에 들었을 밤 12시에 전화를 거는것은 절대로 완전히 매우 아주 무례한 행동이었다. 이렇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초등학생도 아는 일이다. 돌이켜 생각 해 보면, 그가 만화가라서 밤에 자지 않을거란 생각을 했던건 아니었고,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전화번호를 보자 반사적으로 전화를 걸어버렸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만화가니까 괜찮겠지, 라는 사고과정이 들어갔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그 강연의 시작부터 끝까지에 대한 모든 권한과 책임(...사람이 없어서-_-;;)을 갖고있었고, 강풀씨를 생각해 봤는데 어떨까요? 라고 의논 할 사람도 없었고, 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의 무례한 행동에 대한 변명이 되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강풀어떤가! 좋다! 연락처는! 전화번호가 있다! 걸자! 라는 너무나 급박한 마음에 나왔던 행동이었다. 아, 부끄럽다, 정말.
그는 다음날, 그날은 시간이 괜찮으니 하도록 하겠다고 답해주었고, 계획서를 보내기로 했다. 나라면, 특히 요즘처럼 강퍅한 시기의 나라면 불쾌해서라도 안하겠다고 했을지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그는, 요즘 애들말로, 대인배였다.
음, 여담으로, 김규항씨에게는 참으로 실례가 되는 말이지만, 그와의 기회가 닿지 않은것은 일면 결과적으로 다행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김규항씨에게 물어봤는데 그날 시간이 안된단다, 강풀씨가 할 수 있을것 같다' 라고 했을때 90%의 확률로 '김규항이 누구야?' 라고 반문했다. -_-;; 강풀씨는 인지도가 높았으니까.
이건 내가 다닌 모 대학의 특징적인 문제다. 공대생이 대부분이고, 뭔가 메마르고 거칠거칠한 느낌의 학교다. 일례로, 100명 정도가 수강하는 교양과목을 들은적이 있는데, 여성학이었고, 시간강사인 분이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어느날 수업시간에, 이야기를 하다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이갈리아의 딸들' 인가 뭐 그랬을거다. 그 책을 읽어본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선생은 한숨을 푹 쉬시더니, '모 대학이 참 척박해요.' 라고 이야기 했다. 시간강사이다보니, 다른 대학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을테고, 직접 비교가 되었나보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나는 그 말을 '모 대학이 참 천박해요' 라고 들었고, 속으로, 뭐 동의하지 않는건 아니지만, 저렇게 말하면 돈벌이에 지장이 생길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다. 나만 그렇게 들은건 아니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였는지, 교실 분위기가 조금 썰렁해졌고, 선생은 황급히 '아무래도 공대생이 많다보니' 등등의 말을 하시며 다른 말을 이었다. 다행히도 나만 그렇게 생각 했던건지, 다른 학생들도 제대로 다 이해가 되었는지, 그도 아니면 그런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분은 내가 졸업할 때 까지 강의를 계속하고 있었다. (웃자고 하는 얘기다. 실제로 천박하든 어떻든,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학교를 천박하다고 말하는 것은 대체로 옳지않고, 그 선생은 최소한, 그런 분은 아니었다. 확실히.)
아무튼.
강연의 날은 다가왔다. 말했다시피, 나는 정말정말 바빴다. 그리고 그 많은 일들을 소화 해 낼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갖지도 못했고. 그냥 어떻게든 하자, 2005년 후반기를 완벽하게 정리하는 슬로건이었다. 강연 전날, 다시 강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획안은 보셨지요? 어쩌구 저쩌구, 내일 강연은 이러쿵저러쿵... 그런데 강풀씨, "그런데 기획안의 주제가 좀 저랑 안맞는것 같은데요." 쿨럭. 아니 그럼 좀 미리 말씀을 해주시던가,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사실 그건 나의 잘못이었다. 아 왜 이제서야 확인을 했을까, 등의 자책을 하며, 그럼 어떻게 할까요...
한참의 통화와 잠시동안의 생각 그리고 다시 통화 등등의 과정을 거쳐 강연의 내용은 마무리 되었다. 다행히도 학생회에서 처박혀 있던 나의 생각보다는 훨씬 나은, 강풀씨의 의견을 통해, '미래의 문화컨텐츠제작자들을 위하여' 였던가 뭐 그런 조금 더 세련된(?) 제목을 붙이게 되었고, 당일 긴급수정한 현수막을 붙이는데에 성공했다. -_-;;; 그 외에도 옆에서 지켜보던 선배가 아무래도 홍보가 부족해서 사람이 적게 올것같다, 야외에서 강연을 하는건 어떠냐-는 제안을 당일 강풀씨에게 전화로 했다가, 아니 당일에 그런식으로 바꾸면 어떻게 합니까! -죄송합니다, 나쁜뜻이 있었던건 아닙니다, 사람이 적을까봐 그랬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라고 또 사과를 해야했고. 그는 사람은 적어도 좋다, 조용하고 편하게 이야기하고싶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진창 무례한 섭외였다. 시간은 흘러 그는 도착했고, 사진으로 보던것 보다 몸집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_-;; 난 계속해서 죄송합니다, 를 연발하며 그를 강연 장소로 모셨고, 모인 학생들은 적었지만, 다행히도 강연은 그렇게 엉망은 아니었다....고 기억하고 싶다.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조용했고, 학생들은 경청했다. 그가 한 이야기 중에선 '직업이 아닌 장래희망을 가져라'는 말 정도가 기억이 난다. 강연이 끝나고, 몇몇 학생들이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고, 나는 그에게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라고 했지만 선약이 있다며 떠났다.
아마도 강풀씨에게 '모 대학' 이라고 하면 '아 내가 거기에 강연을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 학생회 애들이 정말 개념이 없어' 라고 기억될 것 같다. 정말이지 부끄럽다. 후에 생각해보면 메일이라도, 다시한번 이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학술제가 끝나고, 선거가 시작되었고,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내 주변사람 조차도 돌아보지 않고 있었다. 정말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에게도, 나와 나의 주변에게도.
돌이켜 보면 무례하고 황당한 사람됨에, 엉망이고 준비없는 상황에서 사람을 대했던 나였지만, 지금 나는 그때의 내가 조금 부럽다. 사람들을 만나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서, 어떻게 웃어보여야 하는지 알수가 없어서, 사람들을 피하고 있는 나라서 그렇다. 그 땐 어리기라도 했지.
덧불임: 글을 쓰고 다시 읽으며 생각난건데, 나랑 동거하던 친구여, 왜 그때 나를 말리지 않았던거야 ㅠㅠ
* 그런데 이럴때는 어떤 호칭을 써야할지 고민스럽다.
강풀씨, 는 당연히 직접 부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지만 3인칭으로는 사용해도 되는 것 같다. 나의 생각인데, 우리말을 외국어와 단순비교 하기는 그렇지만, 3인칭으로 Mr. 라는 의미로 사용할 경우에 -씨는 나이와 지위고하와 관계없이 크게 틀리지 않은 호칭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무미건조하고, 존대도 하대도 아닌 그런 호칭이다. (2인칭이라면 확실히 하대이다.) 그래서 존대를 하고싶은 경우엔 거북하다.
강풀님, 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최근 10여년간 어딜가도 ~님을 사용하는 추세인데, 나는 이 과도한 '예의'가 불편하다. 특히 "사랑합니다 ***고객님" 같은거 말이다. 존대는 하고싶은데 이 단어를 쓰자니 불편해서 난감할때가 많다. 지금도.
강풀선생, 이 가장 적합한것 같은데, 역시나 나의 생각이지만, 좋은 단어라고 생각하고. 그런데, 좀 어색하지 않은가. 예전의 '간장선생' 이란 영화도 생각나고. -_-;;
조금 친분이 있는 경우라면 선배, 형이라는 호칭을 좋아하지만, 이 경우는 아닌 듯 하고.
아무튼 그래서 제목은 쉼표로 줄였다. 본문은 님은 거슬리고, 선생으로 쓰다가 도저히 집중이 안되서 씨가 그나마 내용에 집중이 되는것 같아 바꾸었다. 2인칭이라면 선생을 택했을거다. 양해를 구한다.
그러니까 2005년의 가을이었다. 나는 모 대학 모 학생회에서 일하고 있었고, 가을 축제인 학술제를 맞이 했다. 내가 속한 학생회는 연초 4명으로 시작하여, 2학기에 접어들자 2명으로 인원이 줄어들었고, 나와 학생회장이던 선배 둘이서 참으로 많은 일을 해내야 했다. 학술제의 그 많은 일 중 하나가 '강연' 이었고, 나는 그 강연에 대한 모든것을 다 처리 해야했다. 강연 기획, 섭외, 홍보, 금전관리 등등.
아마도 학생의 날을 기념하여 대학생들의 위치가 어쩌고 하는 그런 내용이었을거다.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강연'이라는 기획이, 뭐 그리 새로운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라,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폐기하게 될 리스트에 속해있었다. 난 그것 말고도 할일이 많았다. 삼일동안 포스터 4매와 홍보용 양면 전단지 2매를 포토샵으로 밤새워 만들었고, 온갖가지 물품들을 구매해야 했고, 온갖 장소를 대여해야 했고, 한달에 20만원어치의 전화요금을 소비하며 온갖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대었다.
'사정의 여의치 않으면' 이라는게 내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어떻게든 하자, 라는 막무가내의 생각을 갖고 있기도 했었고. 혼자서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처음으로는 김규항씨에게 메일을 보냈다. 김규항씨는 놀랍게도, 내가 다니던 모 대학과 담장을 나란히 하고 있는 모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여담과 함께, 아쉽게도 그날은 다른 일이 있다는 친절한 답장을 보내 주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마음은 급했다. 어느날 자정이 가까워 집에 돌아가 자취방의 책상 앞에 당시 동거하던 친구와 나란히 앉아 컴퓨터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고민하다가, 만화가는 어떨까, 웹툰이 흥행하고 있으니까, 오오 강풀씨는 어떨까, 이런 대화 끝에, 괜찮을것 같다! 는 생각을 했고,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려고 그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작업실 전화번호가 있는게 아닌가! 우와!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작업실의 후배(혹은 어시스턴트?)인듯 했다. 강풀씨를 바꿔주겠노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모 대학 모 학생회의 모모입니다. 저희가 이번에 어쩌구 저쩌구해서 전화드렸습니다.
강풀씨, "지금 시각이 몇시인지 아십니까? 내일 다시 전화 해 주세요."
...
그때서야 시계를 봤다.
밤 12시.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다음날 전화를 걸어서 죄송하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 강풀씨는 '만화가들은 밤에 자지 않을거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지요' 라고 애써 이해 해 주려는 듯 했다. 하지만 설령, 모든 만화가들은 해가 진 후에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법령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개인적인 시간이며 신체적으로는 의당 잠자리에 들었을 밤 12시에 전화를 거는것은 절대로 완전히 매우 아주 무례한 행동이었다. 이렇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초등학생도 아는 일이다. 돌이켜 생각 해 보면, 그가 만화가라서 밤에 자지 않을거란 생각을 했던건 아니었고,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전화번호를 보자 반사적으로 전화를 걸어버렸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만화가니까 괜찮겠지, 라는 사고과정이 들어갔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그 강연의 시작부터 끝까지에 대한 모든 권한과 책임(...사람이 없어서-_-;;)을 갖고있었고, 강풀씨를 생각해 봤는데 어떨까요? 라고 의논 할 사람도 없었고, 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의 무례한 행동에 대한 변명이 되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강풀어떤가! 좋다! 연락처는! 전화번호가 있다! 걸자! 라는 너무나 급박한 마음에 나왔던 행동이었다. 아, 부끄럽다, 정말.
그는 다음날, 그날은 시간이 괜찮으니 하도록 하겠다고 답해주었고, 계획서를 보내기로 했다. 나라면, 특히 요즘처럼 강퍅한 시기의 나라면 불쾌해서라도 안하겠다고 했을지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그는, 요즘 애들말로, 대인배였다.
음, 여담으로, 김규항씨에게는 참으로 실례가 되는 말이지만, 그와의 기회가 닿지 않은것은 일면 결과적으로 다행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김규항씨에게 물어봤는데 그날 시간이 안된단다, 강풀씨가 할 수 있을것 같다' 라고 했을때 90%의 확률로 '김규항이 누구야?' 라고 반문했다. -_-;; 강풀씨는 인지도가 높았으니까.
이건 내가 다닌 모 대학의 특징적인 문제다. 공대생이 대부분이고, 뭔가 메마르고 거칠거칠한 느낌의 학교다. 일례로, 100명 정도가 수강하는 교양과목을 들은적이 있는데, 여성학이었고, 시간강사인 분이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어느날 수업시간에, 이야기를 하다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이갈리아의 딸들' 인가 뭐 그랬을거다. 그 책을 읽어본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선생은 한숨을 푹 쉬시더니, '모 대학이 참 척박해요.' 라고 이야기 했다. 시간강사이다보니, 다른 대학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을테고, 직접 비교가 되었나보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나는 그 말을 '모 대학이 참 천박해요' 라고 들었고, 속으로, 뭐 동의하지 않는건 아니지만, 저렇게 말하면 돈벌이에 지장이 생길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다. 나만 그렇게 들은건 아니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였는지, 교실 분위기가 조금 썰렁해졌고, 선생은 황급히 '아무래도 공대생이 많다보니' 등등의 말을 하시며 다른 말을 이었다. 다행히도 나만 그렇게 생각 했던건지, 다른 학생들도 제대로 다 이해가 되었는지, 그도 아니면 그런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분은 내가 졸업할 때 까지 강의를 계속하고 있었다. (웃자고 하는 얘기다. 실제로 천박하든 어떻든,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학교를 천박하다고 말하는 것은 대체로 옳지않고, 그 선생은 최소한, 그런 분은 아니었다. 확실히.)
아무튼.
강연의 날은 다가왔다. 말했다시피, 나는 정말정말 바빴다. 그리고 그 많은 일들을 소화 해 낼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갖지도 못했고. 그냥 어떻게든 하자, 2005년 후반기를 완벽하게 정리하는 슬로건이었다. 강연 전날, 다시 강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획안은 보셨지요? 어쩌구 저쩌구, 내일 강연은 이러쿵저러쿵... 그런데 강풀씨, "그런데 기획안의 주제가 좀 저랑 안맞는것 같은데요." 쿨럭. 아니 그럼 좀 미리 말씀을 해주시던가,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사실 그건 나의 잘못이었다. 아 왜 이제서야 확인을 했을까, 등의 자책을 하며, 그럼 어떻게 할까요...
한참의 통화와 잠시동안의 생각 그리고 다시 통화 등등의 과정을 거쳐 강연의 내용은 마무리 되었다. 다행히도 학생회에서 처박혀 있던 나의 생각보다는 훨씬 나은, 강풀씨의 의견을 통해, '미래의 문화컨텐츠제작자들을 위하여' 였던가 뭐 그런 조금 더 세련된(?) 제목을 붙이게 되었고, 당일 긴급수정한 현수막을 붙이는데에 성공했다. -_-;;; 그 외에도 옆에서 지켜보던 선배가 아무래도 홍보가 부족해서 사람이 적게 올것같다, 야외에서 강연을 하는건 어떠냐-는 제안을 당일 강풀씨에게 전화로 했다가, 아니 당일에 그런식으로 바꾸면 어떻게 합니까! -죄송합니다, 나쁜뜻이 있었던건 아닙니다, 사람이 적을까봐 그랬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라고 또 사과를 해야했고. 그는 사람은 적어도 좋다, 조용하고 편하게 이야기하고싶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진창 무례한 섭외였다. 시간은 흘러 그는 도착했고, 사진으로 보던것 보다 몸집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_-;; 난 계속해서 죄송합니다, 를 연발하며 그를 강연 장소로 모셨고, 모인 학생들은 적었지만, 다행히도 강연은 그렇게 엉망은 아니었다....고 기억하고 싶다.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조용했고, 학생들은 경청했다. 그가 한 이야기 중에선 '직업이 아닌 장래희망을 가져라'는 말 정도가 기억이 난다. 강연이 끝나고, 몇몇 학생들이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고, 나는 그에게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라고 했지만 선약이 있다며 떠났다.
아마도 강풀씨에게 '모 대학' 이라고 하면 '아 내가 거기에 강연을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 학생회 애들이 정말 개념이 없어' 라고 기억될 것 같다. 정말이지 부끄럽다. 후에 생각해보면 메일이라도, 다시한번 이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학술제가 끝나고, 선거가 시작되었고,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내 주변사람 조차도 돌아보지 않고 있었다. 정말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에게도, 나와 나의 주변에게도.
돌이켜 보면 무례하고 황당한 사람됨에, 엉망이고 준비없는 상황에서 사람을 대했던 나였지만, 지금 나는 그때의 내가 조금 부럽다. 사람들을 만나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서, 어떻게 웃어보여야 하는지 알수가 없어서, 사람들을 피하고 있는 나라서 그렇다. 그 땐 어리기라도 했지.
덧불임: 글을 쓰고 다시 읽으며 생각난건데, 나랑 동거하던 친구여, 왜 그때 나를 말리지 않았던거야 ㅠㅠ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간만에 들렀는데 공교롭게도 매우 장문의 뜨끈한 글이 올라왔군 -_-;;;;
허허. 타이밍 굿이네요. 인생 어쩌니 저쩌니 해도 결국엔 타이밍이라던데. 허허. 아무튼. 중얼중얼 글쓰기 연습중입니다. 기억이 났으면 싶네요.
아쉽게도 나는 네가 12시에 전화를 건 다음에야 그 일을 들었지.ㅋ
미리 알았다면 말렸겠지만;;
강풀씨가 지금 마음에 담아놓고 있으면 소심한거고 잊었으면 대인배인게야;
벌써 4년째잖아^^;;
허허 그녀는 그때 바로 제 옆에서 저와 함께 대화하고있었단 말입니다... 가해자-_-인 저도 기억나는데, 원래 불쾌한 기억은 더 오래가는 법이잖아요.
그나저나 연습삼아 쓴거라지만 마음에 안들어서 지우고 싶은 마음이...-_-
정말 문득, 들어와봤는데, 새글이 있네...ㅎㅎ
그런 일이 있었군, 재밌다. 혹시라도 나중에 강풀씨를 저자로 만나게 된다면 이 이야기를 해줘야지.
하긴 강풀씨는 워낙에 비싸서(나쁜 뜻 아님) 우리 회사 정도로는 섭외하기 어렵겠지만..^^
그나저나 글을 재미있으니, 계속 써주렴...
회사일에 고사되고 있는 선배를 위해서라도..
참, 알바비는 입금됐냐?
허허 한달 이상씩 글을 안쓰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계속 들러보시나봐요;;
감사합니다, 근데 저는 재미가 없네요 -_ㅜ
언제는 재미있었나하면 뭐 꼭 그런건 아니지만 ㅎㅎ
알바비는 들어왔어요. 메마른 통장에 한줄기 빛이 ㅠㅠ
ㅋㅋㅋ 나름인기블로그란다얘야
으허헝 아는 사람들끼리만 아는 블로그지만 그 나름 인기블로그로군요;; 헝헝
그때 나는
"오 그래 해봐해봐!" 했었지.
사실 우리의 생활 패턴이란게... 그때가 한낮이긴 했었지.
흐흐 생각해보면 만화가들은 밤에 잠을 자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기 보단 내가 밤에 안자니까 남도 밤에 안자는줄 알았던게지 으허허허-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