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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증명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09/07/24 23:32
어릴때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 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다운, 깜찍한 생각이었다. 조금 더 자라고 나니,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가' 가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그런게 사춘기인가 싶다. 그리고 또 얼마가 지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걸 알게되었다. 아직은 내가 좀 더 뭔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환상을 버리지 못했던 때였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이런 사람이라는걸 입증해야한다' 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내가 잘난건 아니어도 나의 실제, 내가 가진것은 그것 밖에 없다고 믿었다. 지금은 '나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 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나란 사람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걸 알아버렸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따위 도대체 알게 무언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Who cares?
다들 그렇게 증명서 한장 떼어가려고 애쓰는게, 인간인지도. 그래서 삶의 모든 기록들이, 출생 결혼 이혼 사고 입학 졸업 성적 취업 실업 사망, 그런것들이 증명서로 요약되는 것인지도. 좀 감상적인 생각이라 민망하긴 하지만.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는 이들은 뭔가 자신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달관, 아니 달관이라는 말은 싫다, 達이라는 글자가 가진, 그 잘난체가 싫다, 그 자字가 들어가는 모든 낱말들이 싫다, 그냥, 그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고, 평범한 인생들이란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두려고 한평생을 소모하는 것이다. 슬픈 것은,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는 이들은 '제가 산 흔적'을 남기는데 비해서, '흔적'을 위해 애쓰는 이들은 대체로, '이슬'처럼 사라진다는 것이다. 차라리 사라지면 다행이지, 보다 큰 '흔적'에 집착하다가 '상처'를 남기고 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이, 노력을 하지 않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것이, 아니,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 한심하지만, 다들 그렇게 산다고 위안, 혹은 외면한다. 고개돌린 사이, 리도카인, 마취되어 버린다.

오래전 부터 쓰고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20대를 위한 변명, 아니, 나를 위한 변명. 변명을 하고싶다. 모자람은 있을지언정, 그리 잘못한 건 없다고 뻔뻔스럽게 나의 무죄를 항변하고 싶다. 조금 턱을 치켜들고 우리가 뭐 그렇게 욕먹을 일을 했냐고 물어보고 싶다. 그러는 당신들은 얼마나 잘났는데, 는 참아 주겠지만, 최소한의 미안한 마음은 어디간거냐고 말하고싶다. 노트에 남은 몇줄의 문장과, 목에 걸려 나오지 않는 말들. 언제쯤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이야기가 막혀서, 다른 말들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것에 신경이 쓰여서, 시간이 이렇게 가는것도. 결국 남은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하지만, 지금 내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것이었다.

지난 몇달간의 시간을 증명, 혹은 변명하기 위해, 나는 또 이런 글을 쓴다. 하, 하. 사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런 '내가 싫다. 밉다. 부끄럽다'...
2009/07/24 23:32 2009/07/24 2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