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에 해당되는 글 4건

  1. 프로작 혹은 페인킬러 (2) 2009/11/24
  2. 위기 (4) 2009/11/22
  3. 요즘 생각했던 것 (2) 2009/11/18
  4. 글 읽기 (7) 2009/11/01
"나의 희망은 지금 보이는 세계의 모습 때문에 우리가 너무 좌절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전쟁 중이고, 전쟁이 끝나면 또 다른 전쟁을 하고, 우리 정부는 비록 수십만 명의 사람이 죽더라도 이 제국을 계속 확장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좌절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좌절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50년 전 남부의 인종차별은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 만큼이나 굳건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또한 베트남전 당시 우리의 젊은이들이 죽거나 몸이 마비된 채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또 우리 정부가 베트남의 마을을 폭격하고 있을 때 전쟁은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남부에서 일어났던 인권운동 처럼 사람들이 전쟁에 항의하기 시작하자 곧 커다란 저항의 불이 붙었습니다. 전국적인 운동이 되었단 말입니다. 군인들이 돌아와 전쟁을 규탄했고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는것을 거부했습니다. 전쟁은 끝이 나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지금 이 순간의 현상이 앞으로 계속되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제도의 갑작스런 붕괴에 놀랐던 기억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독재자에 대해 예상치 못했던 큰 저항이 일어나고 무적의 권력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이 사실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어려울 때에 희망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낭만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 잔인함의 역사 만이 아니라 열정과 희생, 용기와 관용의 역사라는 사실을 믿는 태도입니다. 만약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훌륭하게 처신해온 경우가 아주 많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행동할 힘을 얻는 것입니다.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 입니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최악의 상황과 싸우면서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써 놀라운 승리인 것입니다."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A People's History of American Empire, 하워드 진 지음, 마이크 코노패키 그림, 폴 불 각색, 송민경 옮김, 2008, 다른. 281-284쪽
(아마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의 마지막 장 '희망의 가능성' 의 발췌)

"몇몇 사람이 이렇게 한다고 해서 세상 문제가 해결이 되겠느냐. 제가 강연 할 때 마다 매번 되풀이되는 질문입니다. 그 걱정은 하지 마세요. 우리 개개인은 국가나 사회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이렇게 한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겠느냐 하는 것은 건방진 생각인지도 몰라요. 나 혼자서든 친구들과 함께든 그 길이 옳다 싶으면 잡념 없이 가보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해서 사회 전체가 바뀌면 좋고 안 바뀐다 해도 상관 없습니다. 도리 없는거죠. 내 힘, 내 능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인데 어떻게 할겁니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자주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저 사람들 사는거 재밌네 하면서 동참하는 사람도 생길지 모르죠. 강요할 필요는 없는 거예요."
거꾸로 희망이다, 김수행 외, 2009, 시사iN BOOK. 57쪽, 김종철.

...하지만 나는 미래가 현재의 무한한 연속이라는 것이 무서워 죽겠고, 옳다 싶으면 잡념 없이 가보기는 커녕 잡념이 든다 싶으면 옳다구나 빠져드는데 아 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제기랄. 프로작은 FAIL 페인킬러도 FAIL.
2009/11/24 23:24 2009/11/24 23:24

위기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09/11/22 21:23
'돌아온 외상은 갚을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그것이 괴로운 것이라 해도...' 아다치 미츠루, H2.
위기다. 더이상 자신을 잃으면 안되는데.
2009/11/22 21:23 2009/11/22 21:23

요즘 좀 비인간적인 생활=인터넷을 별로 하지 못하는 생활-_-을 하고 있어서 이것저것 쓰고싶은 이야기는 많았는데 글을 쓰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남에게 메일을 쓰면서 그동안 생각했던 것을 적어버렸다. -_-

(전략)
맑스는 계급이 이원화될것이라고, 따라서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지요. 맑스는 의사 같은 전문직도 결국 임노동자가 되고, 무산자-유산자만이 남을거라고 했어요. 약 40년이 지난 뒤 베버는 중간계급의 분화가 뚜렷 해 질 것이고(그래서 관료제가 어쩌고...), 계급은 더 잘게 쪼개질 것이며, 자본이 아닌 다른 신분 지위가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어요. 음... 결과적으로 보면 베버의 말이 맞겠지요. 그렇다고 맑스가 틀린 건 아니고, 그것이 학문이 발전하는 과정일테고, 200년 전의 맑스가 여전히 완벽하게 들어맞는다면 전 그것도 나름대로 인류의 재앙일거라 생각해요. 어떤 책에서는 베버의 시기는 좀 더 제국주의가 발전하면서 국가제도와 기관이 발달하고 따라서 공무원이라는 중간계급과 관료제 조직이 더욱 발달했기 때문이라고도 하던데요. 아 물론 맑스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지만요.

에... 말이 좀 샜는데, 아무튼. 맑스와 베버의 차이는 '계급의식'일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뭐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요-_- 그냥 제생각에. 그놈의 대자적 계급의식인지 뭔지가 맑스의 뜻처럼 작동하지 않았던거죠. 그래서 자신이 임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노동자들이 생기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노동자가 생기고, 관리자가 생기고. 그런데 마름이란 것도 있었잖아요. 음. 조선시대의 관리는 일단 지주였으니 중간계급이 아니라 자본가라 치고. 그러니 단순히 중간계급이 자본주의 고도화의 소산인 것만은 아닌거죠. 사실 약간 맑스의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본인 스스로도 어렵다고 이야기한 '대자적 계급의식'을 통해서 전세계 노동자가 단결하여 혁명을 일으킨다-는 지극히 의지의 소산인 명제를 주장하면서 더불어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지배한다고 했거든요. 음... 아무리 봐도 계급의식이란건 하부구조는 아닌 것 같은데. 구조주의자이면서도 실존주의적인(노동자의 각성) 주장을 했던 셈이죠.

맑스 역시도 그 시대의 소산이라고 생각해요.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에게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엥겔스에게서 맨체스터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보게 되었고 단호하게 혁명을 예언하던 자신만만한 청년이라니...
(후략)

...그래서 결론적으로 내가 무슨말을 하고싶은건지 그걸 모르겠다! -_-;;;

2009/11/18 16:22 2009/11/18 16:22

글 읽기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09/11/01 00:07
언젠가 이야기 한 적이 있었던가? 최근 근 2년 가까이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신문조차도 찾아 보려고 하지 않았고, 웹페이지에서도 글자가 많으면 넘겨버리곤 했다. 귀찮았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마치 그래, 영어 책을 읽는 것 처럼, 읽던 문장을 또 읽고, 글자를 읽다 보면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지 모르겠고. 그 동안 본 책이라곤 거의 만화책 뿐이었다. 덕분에 만화는 꽤나 보긴 했지만.
한창 책을 열심히 읽었던 때는 아무래도 중고등학생일 때였다. 하루에 두세권도 읽었고, 아는 내용이건 모르는 내용이건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그냥 외워두려고, 아니 외는 정도는 아니어도 기억 해 두려고만 했다. 그리고 살다 보면, 또 다른 책을 읽다 보면, 언젠가 그 문장이 기억이 나고, 그러면 나는 그 문장을 일부분, 깨닫게 되었다. 아니 그건 좀 거창하고, 그렇게 조금씩 이해하는 것 같은 기분이 좋았고, 적당히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고, 약간의 우쭐함을 느끼곤 했다.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책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중고교시절에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한 일은 거의 책읽기 뿐이었다. 자습시간에도 항상 그랬고, 책을 읽는 것이 대한민국의 중등교육이 원하는 자율학습의 형태는 아니지만, 잘못된 건 아니니까, 그리고 난 공부를 안할 뿐, 말썽을 일으키는 학생은 아니었으니까, 종종 잔소리를 듣고, 가끔 성적이 나오면 맞을 뿐, 선생님들도 별로 건드리지 않았다.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 난 꽤 훌륭한 자세의 학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난 수업시간에 잠을 자지도 않았고, 혼자 다른걸 공부하지도 않았고, 항상 열심히 들었으니까. 다만 수업시간 외에는 단 한번도 교과서를 펼치지 않았을 뿐이었지. 성적은 나빴지만, 그런걸 생각하면 나의 그 성적 수준이 대한민국 중등교육의 평균치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학교를 그만두고 책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느낀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게 내 방식의 일탈 행동이었고, 나의 엔트로피를 조절하는, 그러니까, 그게 내가 도피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그것보다 더 큰 일탈-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더이상 책읽기가 필요하지도 않고 유용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책읽기는 별로 즐겁지 않았다. 다만 대학에서의 공부란 것이 대체로 책을 읽는 행위가 선행되어야 했고, 공부에 열심이지는 않았지만 그런 저런 이유로 대한민국 성인의 평균 독서량을 깎아먹지 않는 정도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나는 책을 읽지 않았다. 거의 문자를 거부하는 정도였고, 당연하게도 글도 잘 쓰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 두 문장에서 더 이어지지 않았다. 노트에 적힌 그 한 두줄의 낙서들이 내가 생각하는 전부였다.
게다가, 지식, 특히 시사에 대한 지식은 거의 기피했다. 그래도, 정말 중요한 일들은 어떻게 해서든 듣게 되고, 보게 되었지만, 의도를 가지고 뉴스를 찾아 읽지 않았다. 박식함과 현명함에 대해서 시사에 밝고 역사에 어두운 사람, 시사에 어둡고 역사에 밝은 사람. 그런 비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물론 나는 시사를 기피하고 역사에 무지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시사에 밝다고 해서, 세상에 일어나는 온갖 말도 안되는 뉴스들을 섭렵하고 적당한 말로 조롱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판단이 정확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는 그냥 세상에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조금씩 다시 책을 읽고 있다. 아직 긴 호흡의 글은 힘들고 문학보다는 대체로 인문 사회 교양서지만 개의치 않고 읽고싶은 대로 읽고, 읽다가 지루하면 덮어버린다. 어릴때는 동시에 여러권의 책을 읽는게 힘들었다. 반면에 집중력이 지금보다 훨씬 나아서, 한 권의 책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지금은 집중력을 유지하거나, 또는 어떤 세계관을 그대로 읽어들이기가 쉽지 않아서 여러권의 책을 번갈아 읽으며 적당히 환기를 시켜주어야 한다.
그리고 또 무엇이 달라졌을까. 나는 이번에는 어떤 목적으로 책을 읽는것일까.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일까. 이번엔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될까.
2009/11/01 00:07 2009/11/01 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