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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문제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10/08/09 11:08
이십대 후반. 친구나 선후배들이 결혼하는 것도 이제 더이상 놀랄 일이 아니고, 어쩌면 그게 내 일이 될지도 모르는 때가 되었다. 가끔 그들을 만나 웃고 이야기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나는 때때로 두려워진다. 5년 쯤 뒤, 우리는 아이의 영어유치원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지는 않을까, 10년 쯤 뒤, 특목고와 어학연수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지는 않을까. 우리 중 누군가는 '기러기 아빠' 가 되는 것은 아닐까.
대학시절, 우리는 사회의 진보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용돈 벌이를 위한 과외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 해 본적은 없었다. 우리는 변화와 투쟁을 외쳤지만 그럭저럭 어디가서 부끄럽지 않은 학력을 가진 자신의 사회적 자본에 대해서 고민 해 본 적은 없었다. 고학년이 되고, 졸업이 가까워 오면, '운동단체'에 남아 활동을 지속하는 이들에게 약간의 미안함과 부채감을 가지고, 토익을 보고 취업을 준비했다. 우리는 그다지 다른 삶을 살지는 못했다.
물론 확실히 나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나는 과외를 하는 대신 집에서 용돈을 받았고, 활동가가 되지도, 직장인이 되지도 않은 채 집에 앉아있는 백수 일 뿐이니까. 구차함이 싫어서, 행동할 용기는 내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가까운 타인들에게 업혀 왔을 뿐이니까.
또한 물론, 우리가 어떤 다른 삶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이, 무슨 꼬뮌이라도 만들어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고, 우리가 비판하는 사회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채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과외를 하거나, 취업을 해서 살아가는 친구들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며 비난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만. 확실히 우리는 무언가를 지키려고 했다. 혹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은 했다. 아니, 최대한 양보해서, 뭔가 지켜야 할 게 있다고 말 하기는 했다. 그런데 그 무언가를 지켜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지키며 살아가야 할 지,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로, 우리는 이제 곧, 하나 둘씩, 아이들을 키우게 된다.
내 취업 문제, 내 밥벌이 문제에서 그랬듯이, 고민 없이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사회에 편입했던 것 처럼, 내 자식 문제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지금처럼, 내키진 않지만, 어쩔수 없다는 변명과, 생존을 위한 수단이라는 말을 하며 아이들을 학원으로 입시로 몰아 넣을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 우리는 그 최소한의 고민도 안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88만원 받거나, 겨우 취업에 성공해서 이제 신입사원이 되거나 경력이 조금 쌓인, 우리, 20대, 30대 초반 말이다. 이제 아이를 곧 갖게 될.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세상에 대해서, 우리가 꿈꾸는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이제 우리 자식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386, 이제는 486은 거의가 동의하다시피, 아이들을 학원으로 보냈다. 사교육 시장에서 크게 배를 불리기도 했고, 아이들을 어떻게 입시를 통해 성공시킬 지, 그 방법을, 자신의 경험을 십분 발휘하여, 선보였다. 이제 아이들이 초등학생 쯤 되는, 397이라고 해야할까, 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이들은, 대체로 그 방법을 따라가거나, 일부는 그 이전 세대의 과열된 사교육과, 몰인정한 입시제도에 반대하며,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거나, 주입식 영어교육이 아닌 '엄마표 영어' '영어 동화책 읽기' 류의 새로운 공부 방법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건 뭐냐면, 소위 말하는 '엄마표 영어교육'이 담보로 하는 것은, 엄마의 학력, 엄마의 여유라는 것이다. 대안학교에 보낸다는 것이, 일종의 부모의 금전적 여유를 지불하고 아이의 정서적 안정을 사는 거래 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 아이의 교육' '내 아이의 입시' '내 아이의 성공' 이라는 틀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는 5년 뒤, 10년 뒤, 내 자식 문제에 대해 무어라 이야기 하고 있을까. 나? 나는 아이를 갖지 않는 것으로 여전히 비겁하게 도망치고 있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아이들 학원이야기를 들으며.

2010/08/09 11:08 2010/08/09 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