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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살아가기 (2) 2010/09/24
  2. 그들의 공동체 2010/09/02

살아가기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10/09/24 09:12
지키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무엇을 지키겠다는 것인지도 잊어버리고, 어떻게 살아가는 지도 알수없게 되었을 즈음, 나는 비정규직 회사원 비슷한 무엇이 되었다.
한 달. 여전히 살아가는 것은 어렵다. 나는 매일 나의 사소한 실수로 욕을 먹고, 나도 모르는 내용의 기안을 작성하다가 반려되고, 이미 3/4분기를 지나가는 시점, 나로선 알수 없는 것이 당연한 내용의 지난 예결산을 억지로 짜맞춰 보면서, 내 결재 윗선이 답답해하는 한숨소리와 짜증섞인 고함을 들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사무실에는 모두 나와같은 위촉직 뿐이라 일하기는 편하지만, 다들 쓰다 버리는 사람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 내가 버릴지언정 버림받지는 않겠다는 마음으로 각자의 시간을 버티고 있을 뿐이다.
나 역시도. 불안정한 고용, 확신하지 못하는 자신, 결혼이니 하는 내 의지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것만 같은 세상의 시간들. 앞으로에 대해 아무런 약속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다. 아니, 내가 무기력 하기 때문에 그런 모든것들에 대한 약속을 할 수가 없다. 하루 십여알의 약을 삼키며 억지로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집에 돌아오는 저녁 여덟시가 되면 책 한 권, 신문 한 줄 볼 기력도 남지 않아 무기력하게 잠드는 나에 비해, 퇴근하면 과외를 하고, 대학원 수업을 듣는 이 곳의 사람들은 또 얼마나 내게서 멀리 있는 것일까. 나는 여기서 대체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만족하지 못하는 나. 인정받고 싶어하는 나. 자신감의 근거를 하나도 갖지 못한 나. 그러면서도 자신감이란 아무런 근거 없는 존재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입으로는 말하는 나.
두 마음을 갖지 말아라- 라고 내 앞자리의 사람은 스스로에게 타이른다. 나는. 아무런 마음도 갖지 말자고,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다. 잘 되진 않는다.
2010/09/24 09:12 2010/09/24 09:12
나는, 회사의 중견쯤 되는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요즘 애들은 자기 밖에 몰라' '요즘 애들은 단체생활이란 걸 몰라' 따위의 이야기에 대해서, 삶의 양식이 바뀌어 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정도로만 생각 해 왔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자기 계발'에 매몰되는 것은 안타깝다는 정도가 내가 가졌던 생각이었다.
내가 일하게 된 곳은 반올림해서 창립 40년이 되어가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다. 130여명의 직원이 있고, 50여명의 비정규직과, 150여명의 위촉직을 두고 있다. 나는 바로 그 위촉직이고, 위촉직은 비정규직조차도 되지 않는, 사업단위로 계약하는 알수 없는 존재들이다. 나는 학사출신의 행정직이지만, 석사 나와서 연구 업무를 맡는 사람들도, 나와 똑 같은 대우에 단 월 20만원을 더 받을 뿐이다. 9월 1일, 입사한지 3개월 이내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입 직원 직무 연수에서 간단히 업무과정과 회계, 그리고 조직등에 대한 교육 시간이 끝나고 인사와 복무 규정 등의 시간. 사무국의 총무 인사실에서 나온 연수 담당자는 제발 퇴사할때 어느 정도의 시간을 주고, 서로간에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생활하면 별 문제 없으리라 이야기 했다.
마지막에 위촉직 몇 명이 질문을 했다. '야근을 자주 하게 되는데, 연장근무에 대한 1.5배 수당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야근 수당은 왜 나오지 않습니까?' 연수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국정감사에서 허용된 직원과 비정규직의 수가 있고, 그에 대한 급여만이 지불되며, 이들은 연봉제로 계약하므로 연장근무 수당을 받지 않습니다. 위촉직의 급여는 연구사업비에서 지급하며 이 역시 인건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 지급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저희도 정말 안타깝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또한 생산직도 아니고, 야근과 생산성에 대한 관계를 명확하게 할수 없기 때문에 야근 수당을 지급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또 한사람이 질문했다. '야근수당은 그렇다 하더라도, 야근하게 될 경우 저녁식사비조차 나오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공무원들도 연장근무하면 수당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담당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저희도 저녁비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에 책정된 예산이 없고, 저도 저희 부서 직원들 야근시킬 때 저녁을 사주고 싶지만, 하루이틀도 아니고 부서 담당자가 사비로 지출하기는 부담이 되는것이 사실입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질문했다. '일하면서 정규직 전환 등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까?' 담당자는 대답했다. '비정규직 관련 법에 의해 2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가, 실제로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보다는 비정규직을 2년 안에 해고하는 원인이 되었고, 저희도 이 점에 대해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 왔습니다. 그래서 위촉직은 사업단위로 계약을 하는것으로 조금 형편이 나아진 상황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바로 법과 현실의 괴리죠.'

이런 질의응답때문에 점심시간에 조금 늦었다. 같이 점심 먹자며 나를 기다려주던 같은 부서 사람들이 왜 늦었냐기에, 이런 이야기를 전했더니, 여기서 가장 오래, 2년 넘게 일한 위촉직 두명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 애들이 아직 자기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전혀 모르나보네' 또 한사람이 받는다. '난 여기서 2년 넘게 일했는데 1년이상 고용이 지속 된 적이 없어요. 1년 넘게 일하면 연차도 줘아하고 퇴직금도 줘야하고 그렇거든. 그래서 1월 1일부터 12월 10일까지 계약을 해요. 그리고 나머지 20일은 일용직으로 고용을 해. 내 이력서 한번 보면 진짜 엉망이에요. 뭐가 꾸준히 이어져있는게 없어. 난 계속 같은 업무를 하고 있는데 고용 계약만 바뀌는거지.' 그들은 2년이 넘게, 연구며 사업 관리며 모든 일을 다 하고 있는데, 이제 들어온 나와 똑 같은 월 정액을 받는다. 석사출신인 한 사람은 20만원을 더해서. 한명이 덧붙인다. '그거 노동부에 뭐 얘기하면 퇴직금 이런거 되긴 된대요. 내가 일을 계속한 자료는 있으니까. 나갈때 그걸로 노동부에 진정서 넣으면 주긴 준다더라고. 문제 되긴 싫으니까 조용히 먹고 나가라 이거지.'
좋은 근무환경을 원한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은 줄도 알고 있었다. 만족스럽진 않아도, 내심, 내 양심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의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사람들의 패배감이 심한 줄은 몰랐다. 이곳의 '위촉직'들이 생각하는 미래라고는, 형편이 되면 유학 가는 것, 그게 아니라면 더 나은데 취직하는 것. 아르바이트니 뭐니 해서 두달 정도 인연을 맺은 이 곳에서, 그 외에 다른 비전을 생각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돈 없으면 쓰지 마라- 이게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이라면, 돈 없으면 연구 못한다고 배째고, 돈 없으면 사람 못쓰니 일 못한다고 요구하는것도 자본주의의 원칙 아닐까.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소위 조교들도 이런 처우를 받으면서, 비정규직으로, 2년이 넘기 전에 다른 먹고 살 길을 찾으며 살아간다.
공동체 따윈 없다. 부서 사람들은 모두 친하고, 같은 사무실을 쓰는 사람들이 모두 '위촉직' 이라 편하긴 하지만 아무도 이곳에서의 미래 따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좌파든 우파든 대학교수든 박사든 연구원이든, 자기 아래의 대학원생이나 연구 조원들이 이런 처우를 받고 일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거다. 아무도 제대로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거다. 회사 중견 관리자들은 물론이고. 그러면서 요즘 애들은 공동체 생활을 모른다고 탓하고, 학원이니 뭐니 자기 챙기느라 같이 술 한잔 하는 시간도 아까워 한다고 불평 한다. 그리고 조금 진보적인 사람들이라면, '요즘 젊은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어' 한마디를 더 붙이고. 사업비에서 밥 몇 번 더 사주고, 혹은 사업 좀 더 따오고, 그걸로 고마워하길 바라고.
자기 현실에서 무력함을 느낄때, 사람은 사회에서도 무력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제 직장에서 자신의 처우에 대해 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 정치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낼 리가 없다. 내고 싶을 리가 없다.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진보적인 '말'을 하는 교수들에게 정말로 물어보고 싶다. 연구 보고서와 논문만 쓰면 되는거냐고. 어쩔거냐고.
2010/09/02 11:21 2010/09/02 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