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579건

  1. 서른 2012/01/01
  2. 마루 (1) 2011/12/15
  3. 결혼 2011/11/05
  4. 희망버스에 대한 몇가지 제안 (2) 2011/07/19
  5. 無題 (1) 2011/05/24
  6. 소비 (12) 2011/04/04
  7. 취중잡담 2011/03/08
  8. 어른이 되기 (3) 2011/03/02
  9. 낯선 오늘 2011/01/28
  10. influenza A(H1N1) (2) 2011/01/21

서른

from 쳇바퀴굴리기 2012/01/01 00:12
서른.
흔들려도 좋다.
마음이 강하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후회하고 뒤돌아보는 건 내 천성이려니 한다.
하지만 바란다면,
오래 서 있었으니까.
이제는 걸어가고싶다.
2012/01/01 00:12 2012/01/01 00:12

마루

from 쳇바퀴굴리기 2011/12/15 10:22
????. ??. ??. - 2011. 12. 15.

나는 항상 마루를 남들에게 소개할 때, '이사 할 때 전 주인이 버리고 간 개' 라고 말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우리 집에서 마루를 제일 열심히 돌본것은 나였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목욕을 시킨것도 나였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고 바쁠때면 항상 마루는 방치되었다. 그저 물과 밥을 얻어먹고, 하루종일 묶여 있었다. 올해 들어선 목욕 한 번 시켜주지 못했다. 그러면서 전 주인이 버리고 간 개를 그나마 나는 거둬서 먹이고 있다고 말해왔던 것 같다. 비겁했다.
올해 봄에 큰 수술을 하고 나선 활발하고 아주 건강해졌는데, 12월 들어 그 사람 좋아하던 놈이 사람이 와도 반기질 않고 영 안좋아보였다. 하지만 나는 매일 야근하고 밤샘도 하고 너무 바빴고, 병원에 데려가면 돈도 들었고, 시간이 조금 났을땐 피곤했다. 그래도 먹고 싸는건 괜찮으니까 나아지겠지 했다.
오늘 마루가 죽었다. 손군네 집에 상을 당해서 집을 비우고, 오늘 아침 삼일만에 출근을 하려는데, 마루가 제 집안에서 죽어있었다. 만져보니 이미 딱딱했다. 숨이 막혔다. 하지만 그대로 두고 출근해야 했다.
마루는 참 이상한놈이었다. 일루는 날 좋아할 수 밖에 없다. 내가 매일 끼고 살고, 만져 주고, 먹이고, 좋은 말도 해 주는데, 그런데 마루에겐 그러지 못했다. 내가 회사를 다니고 최근 1년간은 정말 방치되어있었다. 그런데도 사람을 보면 누구에게나 좋아하고 꼬리를 흔들곤 했다. '걘 도둑은 절대로 못잡을거야.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런 개였다.
더 잘 돌봐줬으면, 아니, 조금만이라도 제대로 돌봐줬으면 더 살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질 않는다. 내가 남쪽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지금보다도 더 못 돌볼텐데 어떡하지, 지금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을 팔 계획이고, 그러면 혹시 데려가지 못할수도 있는데, 그럼 어떡하지 누가 돌봐주게 되지, 걱정 했었는데, 우리가 묻어주게 되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해 보지만. 그래도 그렇게 활발하고 사람 좋아하는 애가 힘없이 쳐져있을때, 한번 더 만져볼걸, 병원에라도 데려 가 볼걸, 계속 후회가 된다. 미안하다.
2011/12/15 10:22 2011/12/15 10:22

결혼

from 쳇바퀴굴리기 2011/11/05 08:48
이런 날이 있었다. -2011.11.15.
2011/11/05 08:48 2011/11/05 08:48
어제 내내 트윗만 보다가 퇴근하고서야 명동 마리에 갔습니다. 한진을 보며, 유성을 보며, 전북고속과 강정을 보며 2011년, 우리는 내내 이렇게 애태우고 자신의 죄책감에 작은 면죄부를 주기 위해 용기를 내어 연대에 참여하며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녁의 마리는 뒤늦게 간 제가 부끄럽도록 평화로웠습니다. 아픈 몸과 마음으로, 땀냄새 가득한 인도에 앉아 노래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을지로를 따라 시청앞으로 가면 재능 농성장이 있습니다. 적은 수지만 단정하고 힘차게 저녁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길 건너 대한문 앞에는 한진과 유성의 희망을 위한 단식 농성장이 있습니다. '어버이'들이 물러간 그곳에서 6일째를 마무리 하는 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2011년 7월 18일의 대한민국입니다.

2차 희망버스에 참여했습니다. 앞장서서 온몸으로 최루액과 물대포를 견디지도 못했고, 새벽엔 음식점과 목욕탕에서 몸을 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외부세력'이었습니다. 이런 저이지만, 그리고 다소 늦었지만, 몇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우리 2차 희망버스를 보며 두가지 평가를 해 봅니다.
첫번째, 우리는 이기고 있습니다.
만명이 모였습니다. 칠천이라도 좋습니다. 그만큼이 모였습니다.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이, 그저 모였습니다. 김진숙을 만나려고. 안타까워서, 분노해서, 함께하고 싶어서,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어서. 변변한 언론 보도가 없었음을 비판하는 만큼, 우리는 그만큼 더 대단했습니다.
두번째, 우리는 이겨야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부족했습니다. 여전히 크레인 위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있고, 한진의 해고 노동자들은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겨야합니다. 김진숙을 위해서, 한진을 위해서, 유성을 위해서, 그리고 희망버스에서 희망을 찾고 또 만들고 싶어했던 나와 우리를 위해서, 더이상 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제안 하나. 깃발을 듭시다.
희망버스가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인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조직되지 않음의 한계 또한 명확하게 느꼈습니다. 그날 우리는 차벽 앞에서 무력했고 또 조금 당황스러웠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답답함이 있으나 의견을 피력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과거 전국적인 조직이 존재할 때는, 그들이 움직여 주면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공과 과를 평가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당장은 그런 조직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신뢰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도 역부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직되어야합니다. 조직되지 않은 우리가 모여 공동체가 되어야합니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부산까지 최소 4시간이 걸립니다. 각 버스별로 집행부(깔깔깔)1명과, 참여자 중 조장을 선출합시다. 그리고 그 버스에서 앞으로의 일정, 행동 방침을 논의해서 결정합시다. 단체에 속해있든 속해 있지 않든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논의하고 결정합시다. 그리고 서울 희망버스 1호차, 2호차, 광주 희망버스 1호차, 2호차... 각자의 깃발로 모이고, 그 안에서 함께 행동합시다. 연행자가 생기면 버스별로 논의해서 항의방문을 갈 수도 있고, 버스 사정에 따라 일찍 떠나거나, 더 늦게 남아 뒷정리를 하고 떠날 수도 있습니다. 조장은 의견을 모으고, 해당 버스 집행부는 전체 희망버스와의 소통을 담당합니다.
조직될 수 있다는 것, 공동체 안에서 함께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서로 배워가는 그 과정이 또 하나의 희망이 되리라 믿습니다.

제안 둘. 단체들이 적극 결합해야합니다.
'순수한' '일반' '시민'과 단체들이 같은 현장에서 분리되고 갈등하게 된 현상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개인 참여자의 입장에서는 단체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고, 그들이 패권적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외치는 구호에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노동조합, 금속노조, 민주노총, 그리고 각 정당과 사회단체들은 우리가 한진을 알기 이전에도, 또 한진 이전의 현장에서도 계속해서 투쟁 해 왔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실패도 있고 실수도 있고 한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싸워온 그들을 존중해야합니다. 희망버스 깃발 안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깃발을 들 수 있게 해야합니다. 우리의 싸움 안에서 그들이 더욱 발전하고 함께 강해져야 합니다.
단체 역시 이렇게 많은 시민들과 같은 현장에서 싸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당당하게 깃발을 들고 대오를 지어 참여 합시다. 그리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단체의 목소리를 그들에게 들려줘야 합니다. 또한 그간 투쟁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선전을 책임져주십시오. 이미, 부산에서 많은 정당과 단체들이 단식과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덧붙여, 영도 주민들을 만나 주십시오. 특히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 진보정당 지역 의원들과 지지자들은 반드시 영도 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불편함을 위로하고, 지지를 얻어 내야 합니다. 그 외 개혁정당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지역 주민들로부터 외면받는 투쟁은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런 지역 선전이, 정당에도 도움이 될거라 확신합니다.

제안 셋. 웹을 적극 활용해야합니다.
거칠게 말해, 희망버스는 인터넷 게시판과 트윗으로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러한 도구를 별로 활용하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산발적으로 올라오는 트윗으로는 전체적인 소통이 어렵습니다. 차라리 속보 게시판을 하나 만드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기본적으로 집행부가 책임지고 앞 뒤 전체의 진행 과정과, 돌발적인 상황들을 실시간으로 중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연행자 상황이나 전체 계획 등 보안이 필요한 문제는 비밀번호를 걸어 집행부-각 버스 조장들을 통해 제한적인 공유가 가능합니다. 현장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없도록 웹을 활용해야 합니다.

제안 넷. 다양하게 실험합시다.
여러가지 생각을 해 봅니다. 논의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토론회를 열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일차적으로는 희망버스의 운영 방법, 실제 상황에서의 전략과 전술 등을 논의 할 수도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우리가 지켜야 할 평화시위인지, 지난 2차 희망버스처럼 진행이 막혔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이야기 해 볼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싸움이 한진만의 싸움이 아니기에, 연구자들과 함께 정리해고의 경제학에 대해서, 이미 제조업 공장들을 대부분 해외로 이전한 서구 국가들의 사례에 대해서, 정리해고 이후 해고자들의 삶에 대해서 공부하고 대안을 제시 해 볼수도 있습니다. 법률 전문가들과 함께 희망버스와 여러 사안의 법적 대응에 대해 논의하거나, 정리해고의 법적 과정, 그리고 제조업 사내 하청은 정규직이라는 대법원의 판결과 그 이행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대로 멈춰 있을 수 없기에, 더이상 물러설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모든것을 다 해야합니다. 성공 할수도, 실패 할수도, 무의미할수도, 성과가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험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앞으로의 싸움에 어떻게든 분명히 기여하리라 믿습니다.

다소 늦은 제안임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길게 가야하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내려온다고 하여 이 싸움이 끝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용기 내어 제안합니다.

크레인에서 186일째를 버틴 그사람이 말했듯이, 웃으며 다함께 끝까지 투쟁합시다.
2011/07/19 10:14 2011/07/19 10:14

無題

from 쳇바퀴굴리기 2011/05/24 10:28
# 사는게 사는 것 같지가 않다.

# 예산 집행 실적이 아닌 이야기를 읽고 싶고, 기안이 아닌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틈이 나면 하는 일은 무의미한 클릭클릭, 페이스북의 시티빌, 스마트폰의 팔라독과 스도쿠. 내가 바라는 나와 내가 행동하는 나의 이 엄청난 간극.

# 일주일에 한번, 어떨 땐 두번, 혹은 0번,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출근할때는 탄천-양재천 따라 21km정도, 퇴근 할 때는 양재천-탄천-분당천까지 26km정도. 오늘은 평속 20km을 한 번 찍어 보겠다고 밟다가 발에 쥐가 나는것으로 처참히 마무리 되었다. 그래도 처음엔 두시간 걸리던 것이 그럭저럭 한시간 반 안걸리게 되었고, 2주전엔가 주말에는, 소위 하트코스라는 90km정도의 구간을 7시간 걸려서 돌아 보기도 했다. 이젠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그립도 사고싶고 안장 가방도 사고싶고 속도계도 사고싶지만 gps모듈을 교체한 스마트폰으로 만족 하기로 하고, 당장 급한 체인 오일 정도는 사야겠고.

# 마루는 유선 종양으로 수술했다. 최근 계속 영 활발하지 않더니, 주먹만한 혹에서 고름이 흐르는 지경이 되어서야 발견했다. 회사를 다니니 어쩌니 하면서 잘 돌봐주지 못한 결과였다. 몸을 일으키기도 어려워 하던 개가, 병원에 데려가려고 목줄을 들이밀자 벌떡 일어나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아아 이 불합리한 생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100만원을 들이면 근치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돈이 없었다. 40만원으로 우선 고름과 종양 덩어리를 제거하기로 했다. 전 주인이 버리고 간, 이제 10살쯤 되어보이는 똥개는 그렇게 비싼 개가 되었다. 자전거를 팔아야 하느 어쩌나 했는데, 손군과 카드회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병원에서 엄마는 포기하자고 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는 안락사 이야기를 하고, 나는 동물병원 앞 마당에서 울었다. 사람도 돈이 없어 마음껏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집에서 개에게 40만원이라니. 그런 걸 고려해야 하는 내가 한심했다. 아무튼 잘 수술해서 개는 다시 활발해 졌고, 가족들도 수술 시키길 잘했다며 만족하고 있지만, 아마도 나는 앞으로, 계속해서 이런 고민을 할수 밖에 없을 것이란 걸 안다.

#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는 회사에서 여차저차한 나의 실수와 그걸 보완해 주지 못하는 구조적인 이유로 20만원을 물어주게 되었다.

# 그리고 그 날이 5월 18일이었다.

# 결혼을 하기로 했다. 아마도.

# 아무래도 살면서 겪게되는 피치 못할 사정이란게 이런 건가 싶다.

# 다시 취업을 해야한다. 결혼 후 살게 될 동네에서. 그 과정이 끔찍하고 싫다. 또 다시 나의 무능함을 마주하는 것이 싫고, 덤핑 상품을 팔러 돌아다니는 외판원 노릇이 싫다. 또 어디 공장의 사무직이 되어 지금처럼 숫자와 기안을 들여다 보고 있게 될 나도 싫다. 더불어서, 지금처럼 계급사회의 제일 아랫 고리에서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욕심도 생겼다. 다들 그렇게 산다. 아슬아슬하게 비겁함과 치졸함과 더러움과 책임감과 욕구와 욕망 사이에서 뒤뚱뒤뚱거리며 산다. 그래서, 그러므로, 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2011/05/24 10:28 2011/05/24 10:28

소비

from 쳇바퀴굴리기 2011/04/04 13:21
자전거를 샀다. 25일이면 통장에 찍히는 숫자만이 삶의 의미인 회사원이, 손군발 3개월 무이자 대출 버프까지 받아 마련한 자전거. 자전거 출퇴근이라는 무리한 욕심을 공약으로 소비하고 또 소유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1/04/04 13:21 2011/04/04 13:21

취중잡담

from 쳇바퀴굴리기 2011/03/08 02:06
오랫만이다. 이런 건. 피곤하고 우울하고 컨디션이 영 좋질 않더니, 약을 먹고 누웠는데도 두시간동안 잠들지 못하고 있다가 다시 음악을 틀어 보았다가, 미소가 어울리는 그녀 취미는 사랑이라 하네 하는 구절에서, 애꿎은 전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가 등장했던 꿈 이야기를 해줬다. 여러가지 어른이 되는 절차들로 너무 피곤했었다. 소화불량에 불안하고 매일밤 악몽을 꾸고. 그 악몽 어느 한 구석에서 등장한 그녀는 그녀의 귀여운 노란색 워머를 목에 두르다가, '안 되면 말라지' 하곤 웃었다. 아아, 나도, 안 되면 말라지.
나에게 조금도 만족스럽지 않은 이 모든 상황 안에서, 나는 그저 지나가야 할 통과의례로, 혹은 세상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예방접종으로 여기며 참아 내야하는 걸까. 혹은 이건 내가 아닐 뿐이라고, 그냥 눈 꼭 감고 달려 지나치면 되는걸까. 내가 원하는 나, 나에게 중요한 타인이 원하는 나, 가족이 원하는 나, 직장에서는 동료가 원하는 나, 부서 상사가 원하는 나, 내 담당자가 원하는 나. 이 모든 것들이, 모두가 만족스럽지 못한것은 전적으로 내 탓이다. 그러므로...
아니다. 취중 잡담은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그냥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자.
2011/03/08 02:06 2011/03/08 02:06

어른이 되기

from 쳇바퀴굴리기 2011/03/02 14:56
생활이 그렇게 못견디게 부끄럽지는 않다.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산술평균적으로 양심에 거리끼지 않을 정도의 월급을 받고, 정부관계부처의 한마디에 오락가락하는 기관과 부서에 앉아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몰라서 그러는 척 이런 저런 말을 던져 보기도 하고, 필터링 해 줘야 할 자료들을 슬그머니 올려두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동료들의 고용상태나 일용직의 급여를 챙겨주기도 한다. 겨우, 고작, 그런 정도로, 위안될 수 있는 것이 삶이라면 그렇다.
4개월쯤 전 손군이 우리집에 인사 하러 왔고, 나는 그날 저녁 일곱 번을 토했다. 사흘 전 나는 손군네 부모님과 식사를 했고, 그네들의 요청에 따라 머리도 좀 길렀고, 오전엔 미용실에 가서 이런저런 모양을 낸 머리손질도 했으며, 얼굴엔 살색 크림도 발랐다. 손군의 아침식사를 매일 챙겨줘야 한다는 약속을 해야 했으며, 그리고 두 번 밖에 안 토했다.
월급의 3/4를 생활비로 내는 와중에 결혼을 위한 자금을 생각 해 봐야 하고, 비교적 합리적으로 감정적 금전적 소모가 적은 결혼에 대한 제의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해야 하며, 근 25년간 내멋대로 쥐어 온 젓가락질은 어떻게 고쳐야 할지도 고민해야 하고, 회사에서는 감사가 내려오니 자료를 만들라면 삼일간 군말없이 야근을 하고, 내가 아무리 알아봐도 노동청에 신고하는 것 외에는 도움을 줄 수 없는 동료의 불연속적 고용 기간 문제에 대해서는 고작해야 나갈때 지노위에 이야기 해 보라는 말을 해 주고, 억지로 시간을 내 신문 기사를 읽고, 회비를 내는 몇몇 단체에 전화를 걸어 월급생활자가 되었으니 회비를 조금 더 내겠다는 말을 한다. 그것 뿐이다.
나는 오랫동안, 모든것을 미뤄왔다. 그러나 오스카가 될 수는 없었다. 헛간에서 뛰어 내린 난장이가 될 수는 없었다. 미룬 숙제를 해 치우듯이 어른이 된다. 이렇게 해서 어른이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즐겁지도 않고, 우울하며, 힘들고, 짜증나고, 귀찮고 하기싫은 일들로 가득하고, 그리고, 비싸다. 그리고, 아무것도, 자랑스럽지 않다.
2011/03/02 14:56 2011/03/02 14:56

낯선 오늘

from 쳇바퀴굴리기 2011/01/28 11:50
일주일만에 출근했다. 기묘하게 내 자리가 낯설다. 어제는 마치 개학 전날의 학생 처럼 초조했다. 마지막 남은 하루 더 알차게 뒹굴어야 하는데! 따위의 생각을 하며. 밀린 일기라도 써야하는 걸까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다. 어느새 나도 회사원이었다. 월급이 얼마든 고용상태가 어떻든, 매일매일 출근하는 회사에 매인 몸이 되었다. 언제나 해가 바뀌고 한살 더 먹으면, 한두달의 공백이 있었다. 물론, 내겐 삼년이 고스란히 공백인 시절도 있었고, 내 모든 생활이 하루하루 공백에 잡아먹히는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새로운 나이에 익숙해 질 시간이 있었다. 아니 익숙 해 지진 않더라도, 그 숫자가 입에 배일 만큼의 여유는 있었다. 이젠 그런것도 없이 출근이 이어진다. 왜냐하면 이젠 더이상, 해가 바뀐다고 학년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며, 나이 한살 더 먹는다고 선배가 된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정말로, 항상 깨어있지 않으면,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디로 가는지 아주 영영 알수 없는, 그런 삶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2011/01/28 11:50 2011/01/28 11:50

influenza A(H1N1)

from 쳇바퀴굴리기 2011/01/21 19:16
지난주부터 감기기운이 있더니 수요일 밤 열이 나서 끙끙거리다가 목요일엔 회사에서 내내 시체상태. 여차저차한 이유로 일찍 퇴근하지도 못했는데 영 느낌이 안좋고 몸이 너무 아프기도 해서 퇴근하자마자 분당의 작은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더니 38.4도에 신종플루 양성반응. 다행인 것은 기침이 비교적 심하지 않고 폐렴등의 증상은 없다는 것. 한 일주일 집에서 실컷 잠이나 잘 좋은 기회일지도. 병가는 월급이 까인다고 하니 좀 슬프지만. 방안에 격리되어 있는 중인데 영문을 알 턱이 없는 일루가 하루종일 방문 앞에서 울어대니 마음이 아프다. 흑 나도 아웅아웅.
2011/01/21 19:16 2011/01/21 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