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루는 내가 동아리연합회 선거 이후 신경을 못써주는데다가, 같이 살던 동거녀와의 이별으로 친구 고양이인 몽구와 헤어져 혼자 하루종일 빈 방에서 지내게 되자, 마치 주인 없는 거지 고양이처럼 먹어대는 것 같다. 낮에는 잠만 자고. 그래서 너무 살이 쪄버렸다. 심심해하지 않게 친구라도 마련해 주려고 탁묘를 시작했다. 탁묘는 8개월된 하얀 고양이. 원래 불리우던 이름은 줄리 이지만, 애들 이름은 험하게 지어야 오래산다-_-는 얘기도 있고 뭐 또 일루와 이름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흰둥이라고 부르고 있다. 작고 귀엽고 뭐 다 좋은데, 문제는 이놈 성격이 일루와 너무 다르다는 것. 조용하고 소심하고 얌전한 일루와 달리 흰둥이는 발랄하고 또 사람에게는 친숙한 반면 일루에겐 그닥 살갑게 대하지 못했다. 나는 일루에게 길들여진 사람이라 잘 적응이 안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럭저럭 나도 일루도 흰둥이도 서로 같이살기에 적응 되어갈 무렵.

꽃 피는 봄이 오니 흰둥이의 첫 발정이 시작되었다. 일루는 발정기에 끼룩끼룩거리며 나 쓰다듬어줘! 라고 하며 들이대고 발정기 특유의 자세를 취하며 딴일 하고 있는(주로 컴퓨터) 사람의 주의를 자신에게 집중시키려고 노력하는 것 이외엔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지만 흰둥이는 달랐다. 이놈은 목이 쉴때까지 울어제끼고 제 힘으로 창문을 열고 방범창 사이로 가출을 하기 시작했다. 쉰 목으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면(우는게 아니다, 고함을 지른다-_-) 그 소릴 듣고 동네고양이들이 창밖에서 코러스를 넣곤 하였다. 나는 일루가 방범창 사이로 못나가는 덩치라 방범창 사이로 고양이가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망각하고 있었는데, 일루의 몸둘레의 1/2밖에 안되는 흰둥이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원 주인과 상의해서 수술을 하기로 하였지만, 수술은 발정이 끝난 뒤 몇일이 지나야 할 수 있다고 했다. 수술까지 앞으로 열흘. 열흘동안 나는 밤낮없이 쉰 목으로 고함을 질러대는 고양이와 함께, 가출하여 고양이를 잃어버리거나 임신시키는 불상사를 막기위해 창문도 열지 못한 채 소음으로 인한 민원으로 이 집에서 쫓겨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 내게 주어진 과제인 것이다.

오늘도 밤늦게 돌아와 가출한 흰둥이를 잡아다가 화장실에 넣어두고 대충 집안을 정리한 뒤 흰둥이를 씻기고 말리는데 자꾸 탄내가 나는 것이었다. 설마 왠 탄내람, 옆에 음식점 냄새겠지, 하는데 밖에서 일루가 미친듯이 울어제끼는 것이었다. 너까지 왜그러냐 이놈아 내가 쫓겨나야 속이 시원하겠냐! 하며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 밖에서 몰려드는 매캐한 연기 그리고 한치앞이 안보이는 방안.

아 이게 무언가. 나는 흰둥이를 씻기기 전에 밥을 올려놓았던 것이었다. 세끼를 다 안먹으니 약을 세번 챙겨먹지 못해서 밥을 해두려고 했었는데. 잊어버렸던 것이지. 부랴부랴 가스렌지 불을 끄고 화장실 안에 두 고양이를 가둔 뒤 창문을 열고 문을 열어 복도로 나가니 복도까지 꽉 찬 연기와 탄내. 복도까지 환기를 시키고 문까지 열어두니 대충 연기는 빠졌지만 계속된 탄내. 편의점 가서 제사지내냐는 질문을 받으며 양초를 여러개 사오고 뇌입어 지식인 검색으로 탄 냄비는 식초로 닦는다고 하여 식초도 사오고. 이제서야 대강 수습이 되었다. 아직 냄비는 새카맣게 탄 채로 식초에 몸을 담그고 있지만.

방 닦고, 흰둥이도 다 말렸고, 연기를 잔뜩 마셨을 고양이들에게 밥을 차려 주고, 난 이제 잔다. 그냥 주제없는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2006/04/13 04:20 2006/04/13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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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6/04/13 15:3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나(ㅁㅈ) 2006/04/14 22:2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근데 탁묘가 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