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읽기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09/11/01 00:07
언젠가 이야기 한 적이 있었던가? 최근 근 2년 가까이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신문조차도 찾아 보려고 하지 않았고, 웹페이지에서도 글자가 많으면 넘겨버리곤 했다. 귀찮았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마치 그래, 영어 책을 읽는 것 처럼, 읽던 문장을 또 읽고, 글자를 읽다 보면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지 모르겠고. 그 동안 본 책이라곤 거의 만화책 뿐이었다. 덕분에 만화는 꽤나 보긴 했지만.
한창 책을 열심히 읽었던 때는 아무래도 중고등학생일 때였다. 하루에 두세권도 읽었고, 아는 내용이건 모르는 내용이건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그냥 외워두려고, 아니 외는 정도는 아니어도 기억 해 두려고만 했다. 그리고 살다 보면, 또 다른 책을 읽다 보면, 언젠가 그 문장이 기억이 나고, 그러면 나는 그 문장을 일부분, 깨닫게 되었다. 아니 그건 좀 거창하고, 그렇게 조금씩 이해하는 것 같은 기분이 좋았고, 적당히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고, 약간의 우쭐함을 느끼곤 했다.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책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중고교시절에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한 일은 거의 책읽기 뿐이었다. 자습시간에도 항상 그랬고, 책을 읽는 것이 대한민국의 중등교육이 원하는 자율학습의 형태는 아니지만, 잘못된 건 아니니까, 그리고 난 공부를 안할 뿐, 말썽을 일으키는 학생은 아니었으니까, 종종 잔소리를 듣고, 가끔 성적이 나오면 맞을 뿐, 선생님들도 별로 건드리지 않았다.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 난 꽤 훌륭한 자세의 학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난 수업시간에 잠을 자지도 않았고, 혼자 다른걸 공부하지도 않았고, 항상 열심히 들었으니까. 다만 수업시간 외에는 단 한번도 교과서를 펼치지 않았을 뿐이었지. 성적은 나빴지만, 그런걸 생각하면 나의 그 성적 수준이 대한민국 중등교육의 평균치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학교를 그만두고 책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느낀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게 내 방식의 일탈 행동이었고, 나의 엔트로피를 조절하는, 그러니까, 그게 내가 도피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그것보다 더 큰 일탈-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더이상 책읽기가 필요하지도 않고 유용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책읽기는 별로 즐겁지 않았다. 다만 대학에서의 공부란 것이 대체로 책을 읽는 행위가 선행되어야 했고, 공부에 열심이지는 않았지만 그런 저런 이유로 대한민국 성인의 평균 독서량을 깎아먹지 않는 정도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나는 책을 읽지 않았다. 거의 문자를 거부하는 정도였고, 당연하게도 글도 잘 쓰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 두 문장에서 더 이어지지 않았다. 노트에 적힌 그 한 두줄의 낙서들이 내가 생각하는 전부였다.
게다가, 지식, 특히 시사에 대한 지식은 거의 기피했다. 그래도, 정말 중요한 일들은 어떻게 해서든 듣게 되고, 보게 되었지만, 의도를 가지고 뉴스를 찾아 읽지 않았다. 박식함과 현명함에 대해서 시사에 밝고 역사에 어두운 사람, 시사에 어둡고 역사에 밝은 사람. 그런 비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물론 나는 시사를 기피하고 역사에 무지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시사에 밝다고 해서, 세상에 일어나는 온갖 말도 안되는 뉴스들을 섭렵하고 적당한 말로 조롱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판단이 정확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는 그냥 세상에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조금씩 다시 책을 읽고 있다. 아직 긴 호흡의 글은 힘들고 문학보다는 대체로 인문 사회 교양서지만 개의치 않고 읽고싶은 대로 읽고, 읽다가 지루하면 덮어버린다. 어릴때는 동시에 여러권의 책을 읽는게 힘들었다. 반면에 집중력이 지금보다 훨씬 나아서, 한 권의 책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지금은 집중력을 유지하거나, 또는 어떤 세계관을 그대로 읽어들이기가 쉽지 않아서 여러권의 책을 번갈아 읽으며 적당히 환기를 시켜주어야 한다.
그리고 또 무엇이 달라졌을까. 나는 이번에는 어떤 목적으로 책을 읽는것일까.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일까. 이번엔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될까.
2009/11/01 00:07 2009/11/0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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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eja 2009/11/01 01:1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나도 요새 책읽기에 대해 생각을 좀 하고있다. 어떤 글을 얼마나 읽어야 도움이 될까를 고민하다가 그런데 나는 책읽기로 무엇을 얻으려는 거지를 궁금해하다 꼭 뭘 얻어야겠나 싶다가도 그렇다고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인 건 좀 우습지 않나하면서 번민하다가
    책을 안 봐;;;

    그리고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요즘 문학 장르에 속하는 글을 못 읽겠다는 거야. 왜 그런지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한문단으로 요약해주는 초록이 없고 여차하면 읽어야하는 결론과 논의 부분이 없다."
    이런 망나니스러운 이유를 찾았다...

    읽힐 때가 있겠지 언젠가 예전처럼?

    • 모깃불 2009/11/02 10:31  address  modify / delete

      예전처럼 읽히....기를 바라기도 하면서
      왠지 그렇게 읽는 행위-그러니까 뭔가를 섭취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고 유연한 시절이 지나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어쩌면 뭐랄까 책을 읽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나의 적당한 지적 허영을 과시하고 싶은 생각은 아닐까 싶기도 하면서
      ....나도 그러면서 책을 안읽었지 하하하하하-_-
      나도 문학을 잘 못읽겠어
      결론도 없고.... 사실 사회과학서 같은건
      읽다가, 주욱 설명과 예가 나오는 부분은 대충 패스 하고 또 필요한 부분만 읽고, 목차를 보고 필요한 부분만 선택해서 보고, 뭐 그런게 가능한데 문학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런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막 10권짜리 소설을 쉬지않고 읽던 나는 도대체 무슨생각이었을까-_- 그게 나 같지가 않아;;

      .....그런데 30권짜리 만화책은 또 읽힌다? ㅋㅋㅋㅋ

  2. 펑크키드 2009/11/01 23:4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 해자
    굿 럭 투유 ㅋ

  3. ppoyo 2009/11/03 15:4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헐.... 여기 나랑 같은 증세 한 명 더 있네...?
    십수년간의 소망이었던 원목책장을 짜넣고, 책 정리를 다 한 후,
    도대체 저 책들은 뭥미??
    그리고 최근에 사들였으나 앞장만 뒤적거리고 쌓여있는 책들은 또 뭥미??
    평생 책이 좋았고, 지금은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나는 또 뭥미??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요즘...

    • 모깃불 2009/11/04 00:43  address  modify / delete

      으헝헝...
      역시 뭔가 읽는다는게... 뭔가 받아들이는 것인 동시에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음... 책 읽는 형태에 나이가 꽤나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저는. 닥치는대로 읽는게 좋은 때가 있고, 하나를 반복해서 보는 게 좋은 때가 있고. 긴호흡의 글을 읽는게 좋은 때가 있고, 가볍고 다양하게 읽는것이 좋은 때가 있고.
      그 나이, 라는 조건 처럼, 심리적 이나 여러가지 여건도 마찬가지이겠죠.
      음........
      괜찮아요. 사람이 교과서를 통채로 못외우니까 가방에 책을 넣어다니고, 스케쥴을 다 기억 못하니까 수첩에 적고 pda에 적듯이, 우린 책을 다 못읽으니까 책장에 넣는 것 뿐이에요. 하하하하-_-;;;; 뭐라카노-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