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김수영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1991년 5월" 이라는 긴 제목의 책을 읽다가 잊혀진 시의 한 구절을 보았다.

아무것도,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시대.
끝까지 반성하지 않을 절망.
2004/01/31 03:26 2004/01/31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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