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재다능이야 말로 무서운 생(生)의 함정이지요. 이것 저것 착수를 해보면 조금씩 되거든요? 그 재미에 빠지다간 자칫 호사가(好事家)가 되고 말 공산이 큽니다. 정진(精進)은 못하고. 하지만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누구나 다 각자 제 할 수 있는 일의 선수가 되어야 할 겁니다. 농사면 농사, 살림이면 살림. 그리고 민족운동, 혹은 독립운동, 같은 것 말이지요. 또 교육을 맡은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나라의 번영에 앞장서는 일꾼들은 모두 이 불우한 시대의 선수들 입니다.
(...)
그런데 묘한 일이지요. 선수들이란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다하여 제 존재의 영역을 보다 넓고 높게 개척하는 사람들일텐데, 그 재능을 부여받은 부분에 가장 극심하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단 말입니다. 꽃이 그 아름다움 때문에 꺾이기 쉬운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축구 선수는 다리뼈 성할 날이 없고, 공을 너무 세게 맞아서 금이 가거나, 삐거나 하니까요. 달리기 잘 하는 사람은 무릎 성할 날이 없지요. 넘어지는 것이 곧 달리기 선수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위험한 일이지요.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래서 선수는 훌륭한 것 아닐까요?
(...)
선수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몸을 바치는 존재지만, 그 꿈을 이루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의 잠재욕구를 짊어지고 싸우는, 이중적인 존재입니다.
-혼불, 최명희, 한길사, 9권. p.51-52 이두석.


아침에 일어나 멍하니 누워있는데 갑자기 생각났다. 10년전에는 이 글을 다재다능하기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 generallist가 멋있잖아, 라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그게 바로 산만하고 집중력 없는 이들이 가지는 착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하고 조급해서 이것저것 건드려 보다가 그만두고 혹은 건드리는 상상만 해 보다가 그만두고. 그래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만 하게 되고. 그게 지금의 나.

내가 그나마 꾸준히, 아니 꾸준하지는 않아도 그나마 놓지 않고 계속 했던 것은 독서다. 책을 계속해서 읽게 해준 힘은 바로 이런 것이다. 어느 순간, 지나간 책의 구절이 떠오르면서,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그런 느낌. 거기에 사춘기의 허세, 지적 호기심을 충족한다는 자만같은 것들이 더해진 것이 나의 독서의 원동력이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좋다. 무슨말인지 몰라도 좋다. 읽어두면 언젠가, 그 말이 떠오를 때가 있고, 그 글을 옮겨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언젠가 저걸로 잘난 척 할 수 있을 때가 오고, 그 말을 빌어 내 감정을 전달 할 수 있을 때가 온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청소년을 위한 토지' 같은 책들을 반대한다. 중학생이 문장 자체를 이해 할 수 없는 글을 쓴다면 그것은 대체로 작가의 능력 문제다. 그것을 쉽게 풀어 쓴다고 해서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대체로 작가와 그의 글이 담아내는 삶에 대한 모독이다. 또한 '토지'같은 소설을 중학생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체로 젊은 지성과 영혼에 대한 오판이다. 게다가 성인이 청소년보다 책을 더 많이 읽지 않는 요즘, '청소년을 위한 토지'를 읽은 청소년이 자라서 '토지'를 다시 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원본 소설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갔던 말 들,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인물들의 대화와 묘사들을 삶에서 하나씩 체득하는 과정을 거쳐야한다. 삶에서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을 들여서 아니 세월을 들여서. 그 체득의 순간을 경험할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된다. 독서는 단순히 글을 읽는 과정이 아니고, 모든것을 다 이해해서 시험을 쳐야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토지'를 못 읽겠다면 딴 걸 읽으면 된다. 아이들이 '토지'의 줄거리를 익혀서 논술 따위에 써먹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물론, 잘 팔리니까, 계속 만들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뭐 원전주의자이거나 하는건 아니다. -_-

흠. 본격 무슨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글-_-
2010/04/01 11:45 2010/04/0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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