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조오금 정신 없이 지내고 있는듯 하다. 할 일도 많았고 한 일도 많았...나? (쳇;) 만난 사람도 많고 한 이야기도 많고 들은 이야기도 많고. 나의 마음도 바쁘고 정리가 되지않아 여기저기 툭툭 부딫히고 있다.
설 전주 주말에는 동아리 이월엠티를 갔다. 2학년 그러니까 작년 여름에 회장단이 되어(1학기때도 회장단 비스무리 했지만 뭐 정식은 아니었다) 나는 휴학을 했고, 회사를 다녔고- 그리고 그 다음 겨울에 다시 이월을 해주었다. 나는 한것이 없다. 나름대로 이월 준비랍시고는 한다고 노력했지만. 휴학하는동안 그나마 감도 없어졌는데 내가 해 봤자 무얼 했겠는가. 미안한 마음으로 갔고, 가서야 겨우 나는 참 할 말이 없구나, 라고 절실하게 느꼈고, 책임감을 갖고 돌아왔다. 결국, 무엇을 할 것인가- 의 문제 돌고 돌아봤자 출발점은 같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한다.
그리고는 황토색 옷 입은 선배들의 심리공판을 보았고, 쓰게 웃었고, 면회를 갔었다. 무어라고 해야할까. 동아일보에서 친절히 "주체사상 전파를 위해 군입대투쟁까지 벌인" 이들이라고 멋지게 수식해 준 사람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그리고 그들이 검사와 판사의 질문에 대답하는걸 듣고 있으면, 내가 서있는 땅이 어떤곳인지,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당신 아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떨리는 입술로 눈물 흘리는 구속된 선배 아버님의 모습과 좀 넓은 집에 셋이서 자취를 한다고 '그럼 그건 집이 아니라 모임 장소네' 라고 명쾌하게 단정짓는 검사의 어깨를 떠올리면, 이 땅에서 나는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 위치 설정도 명확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한 사람과 내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소중한 일에대한 선택을 강요당했을때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했다. 나는 그냥 울었고, 심장이 아프다- 고 생각했을 뿐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바꿔 말해 둘 중 하나를 잃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아니, 어차피, 둘 다 가질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했다.
그리고 설이되어, 큰집에 갔다가, 엄니와 둘이서 버스타고 외가에, 어머니 8남매중 여자 5명중 여자 3명이 목사와 결혼 1명은 목사준비생;과 결혼 어머니만이 평범(...)한 회사원과 결혼하고 남자3명중 2명이 목사인; 한국 기독교계를 짊어지고갈(어이.) 그런 외가에 갔을때, 외할머니는 나에게 어딘가에 함께 갈 것을 종용하셨고 따라 나선곳은 나의 병을 치료해주고, 어머니의 최대 고민인 아버지 퇴직문제를 상담 해 준다는 점집...이라면 차라리 웃었을 것을, 영성훈련원(이런것도 있다)에 끌려가 전투적인 찬송가를 줄지어 부르고 (집회나가서 팔 휘두르며 투쟁! 을 외치는 분위기와 너무나 흡사하여 놀랐다는-_-;) 그들만의 방-_-언; 을 하는 기도-_-를 감사히 받았다. 성격 같아서는 도망쳐버렸겠지만, 스무살이 훌쩍 넘고도 할머니 할아버지 걱정시키는 내 죄라고 생각하며 꾸욱 참고 다다음주에 혼자 내려와 일주일간 더 기도를 받으라는 할머니의 말씀을 뒤로하고 후닥닥 올라와 버렸지.
양력으로도 음력으로도 이제는 이천사년. 그리고 이제 곧 2월. 단 하루라도 쇼부치게 되면 이미 끝장난 인생이라고, 내일로 미루는 놈들이 제일 바보라고, 도박묵시록 카이지에 나왔던가. 알면서도 나는 아침에 일어나 시계를 보고 다시 눈을 감고 약속시간이 다가와도 시계만 보며 앉아있고 내가 해야할 많은 일들, 무엇 때문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해야할 일들을 해야하는데- 라고 한숨만 쉬며 여전히 컴퓨터 앞에서 노가리 까고 뒹굴뒹굴 뒹군다.
당신도 문제고
나도 문제고
당신들도 문제고
턱도 문제고
복학도 문제고
부모님도 문제고
돈도 문제고
건강도 문제고
학업도 문제고
나의 진로도 문제고
....어이, 누구나 다 그런거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말자고. 다른게 아냐. 네가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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